대실료는 무료

마음을 길들이는 법

눈이슬픈남자 2017. 6. 12. 22:58




나는 책을 덮고 마음을 훈련하는 데 집중했다.나의 마음은 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사람이 있든 없든 악을 행하지 않는다.아주 작은 동물도 죽이지 않는다.만약 누군가가 개미 한 마리를 손으로 눌러 죽여 달라고 부탁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엄청난 돈을 준다고 해도 할 수 없다.개미 한 마리의 목숨이 엄청난 돈보다 휠씬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심결에 곤충을 죽일 수는 있다.개미가 무릎 위로 기어오르는데 무심결에 손으로 쓱 문지를 수도 있다.동요나 의심도 없다.왜 그럴까?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도덕적 훈련의 핵심은 바로 의도에 있다.경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그런 일로 몹시 괴로워하곤 했다.계율을 어겼다고 생각했다.

"무얼 어겼다는 거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의도는 없었지만 조심하지 않았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초조해하고 걱정했다.이렇듯 계율은 법 수행자의 마음을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스승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모르는 것이 있으면 답을 아는 사람에게 물으라."라고 말한다.항상 그 점을 강조한다.

수행의 계율을 잘 모르면 계율에 어긋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롬부리 지방 코윙곳 사원의 테라 스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하루는 스님이 마하(팔리 경전을 4년 이상 공부한 비구)한명과 앉아 있는데,여자들이 와서 스님에게 물었다.

"루앙 포(아버지 스님,존경 받는 스님을 칭하는 정감 있는 말)!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스님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곁에 앉아 있던 마하는 스님이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루앙 포,못 들으셨습니까?여자들이 함께 소풍을 가자고 했습니다."

"들었다.

스님이 대답했다.

여자들이 다시 물었다.

"루앙 포,가실 건가요? 안 가실 건가요!"

스님은 여자들의 제안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자들이 돌아간 뒤 마하가 물었다.

"루앙 포,왜 여자들한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마하,너는 이 계율을 모르느냐 조금 전에 왔던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었다.여자들이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하면 동의해서는 안 된다.여자들이 자기들끼리 계획을 세웠다면 내가 가고 싶을 때 따라가도 무방하다.게획을 세울 때 동조하지 않았으니까."

마하는 앉아서 생각했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

계율에 따르면 여자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가는 것은 단 둘이 아니라 여럿이 가는 것이라도 파시티야(참회가 요구되는 아흔 가지 계율)를 어긴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평신도들이 아잔 포 스님에게 돈을 가지고 오곤 했는데 스님은 받는 헝겊(승려들이 여자들에게 공양을 받을 때 사용하는 천)의 한쪽 끝을 잡고 내밀곤 했다.사람들이 돈 봉투를 받는 헝겊 위에 올려놓는 순간 스님은 헝겊에서 손을 떼고 돈을 그 자리에 두었다.스님은 헝겊 위에 돈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돈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일어서서 가버렸다.스님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울장]에 의하면 돈을 받는 행위에 동참하지 않으면 평신도들이 공양하는 것을 금지할 이유가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만약 스님이 돈을 원했다면 "이것은 승려에게 금지되어 있다."라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만약 욕망이 있다면 신도들이 허가되지 않은 공양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그러나 아무런 욕망도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그저 거기에 두고 가버리면 된다.

아잔 포 스님은 제자들과 여러 해 동안 함께 생활했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스님의 수행을 이해하지 못했다.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나는 아잔 포 스님의 수행에 대해 깊이 분석하고 명상했다.때로 (율장)때문에 승려들이 횐속하기도 한다.그것을 공부하다 보면 갖가지 의심이 들게 마련이다.그 의심은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의 수계식은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나의 스승은 청렴했나? 수계식 때 참석한 승려 중 아무도 계율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그들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앉아 있었나? 염불은 제대로 했나?"

끊임없이 의심이 밀려든다.

'수게식을 한 법당은 적절했나? 너무 작지는 않았나?'

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지옥에 빠져 든다.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깨닫기까지 참으로 힘겨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그럴 때는 냉정해야 한다.무엇에든 덥석 달려들지 말라.그러나 냉정을 유지한다고 사물을 천천히 들여다보지도 않는 것도 잘못이다.나 역시 한때는 혼란에 빠져 승복을 벗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나의 수행에서 너무 많은 결함을 발견했고 스승의 허물도 보았기 때문이다.의심의 불길에 휩싸였고 그로 인해 잠도 이루지 못했다.

의심이 들수록 더 열심히 명상하고 더 열심히 수행했다.의심이 들면 바로 그곳에서 수행을 시작했다.그러다 보니 지혜가 생겨났다.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그 변화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의심이 사라질 떄까지 마음이 변했고 어떻게 변했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설명을 한다 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생각했다.깨달음이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율장]을 공부하는 것은 분명 옳은 일이다.그러나 그것이 그저 공부에서 그친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계율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