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두 가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그것은 속세의 쾌락에 빠지느냐 아니면 그것을 초월하느냐이다.붓다께선 속세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셨다.그와 마찬가지로 지식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속세의 지식과 진정한 지혜라고 할 수 있는 초월적 지식이다.아직 수행하고 훈련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은 속세의 것일뿐이며 우리를 해탈로 이끌지 않는다.이 말을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붓다께선 "속세의 모든 것은 속세를 중심으로 돈다."고 하셨다.속세의 길을 따르다 보면 마음은 속세에 얽히게 된다,마음은 오는 것과 가는 것을 모두 붙잡아 스스로를 오염시키면서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속세의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찾고 있다.그러나 결코 만족할 만큼 얻지는 못한다.속세의 지식은 사실 무지와 같다.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식이 아니다.이 지식에는 끝도 없다.그저 재물을 축적하고,지위를 얻고,칭찬과 쾌락을 따르는 속세의 목표를 중심으로 맴돌 뿐이다.한마디로 우리를 꼼짝 못하게 옭아매는 거대한 미혹의 덩어리라고 말할 수 있다.무언가를 손에 넣으면 시기와 근심,이기심이 생긴다.그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고,그 위협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여겨지면 다양한 방책을 고안하기 시작한다.간단한 무기부터 핵폭탄까지 ,서로를 한 방에 날려 버리기 위해 그런 것들을 고안한다.왜 세상에는 이러한 혼란과 고통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습이다.붓다꼐선 일단 속세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결코 끝이 없다고 하셨다.해탈을 위해 당장 수행하라.진정한 지혜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마음을 다해 그 길을 찾는 자,해탈을 추구하는 자라면 참고 견딜 수 있다.작은 것에 만족하고,적게 먹고,적게 자고,적게 말하는 삶,중용의 삶을 살 수 있다.그렇게 함으로써 속세의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속세의 것을 뿌리 뽑지 못하면 혼란과 번뇌 속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궤도를 맴돌게 된다.계를 받은 뒤에도 속세의 것들이 여전히 당신을 잡아 당긴다.그것들이 견해를 만들고 생각에 색을 입히고 치장한다.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속세에서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말한다.모든 것을 완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그저 희망일 뿐이다.그것은 새로 선출된 수상이 자신의 새 정책들을 펼쳐 보고 싶어하는 것과 같다.그는 자신이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새 수상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다.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좋아하고,어떤 사람은 적은 것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짧은 것을 ,어떤 이는 긴 것을 좋아한다.모든 사람들로부터 협의를 이끌어 내기란 불가능하다.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한다.그러나 복잡한 속세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성취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귀한 왕자의 신분으로 태어난 붓다조차 속세의 삶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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